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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언제였을까 – 미로쿠의 농담 속에 숨은 진짜 마음

by 글만있다 2025.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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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속 미로쿠는 언제나 가볍다.
여자를 보면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습니까?”라며 익숙하게 작업을 걸고,
농담 반 진심 반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어느 순간엔 진지하다가도,
곧장 능청스러운 미소로 말을 흐려버리는 그 모습은
그를 ‘바람둥이 승려’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 수많은 농담들 속에 숨어 있는 진심은 과연 언제였을까?
혹시 그는, 애초부터 그 농담들로
자신의 감정을 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1. 웃음이라는 방어막 – 농담은 그의 가면이었다

미로쿠는 어릴 적부터 죽음을 예고받은 삶을 살아왔다.
그의 몸에는 ‘풍혈’이라는 저주가 있고,
그 구멍은 점점 커져 결국 그를 집어삼킬 운명이다.

그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저주는 아버지에게서,
아버지는 또 그 위 세대에게서 이어받았다.

미로쿠는 말장난과 농담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농담들은 그의 밝음이나 쾌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진실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진심으로 화를 내기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긴,
삶이 너무 짧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그는 늘 가볍게 웃는다.
그 가벼움이, 가장 무거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2.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습니까’ – 생을 향한 의지

이 대사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미로쿠는 여러 여성들에게 이 말을 반복한다.
겉으로는 장난처럼 들리지만,
이 말속에는 깊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고,
풍혈이라는 저주는 언젠가 자신을 삼킬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는 자신의 피를 이어받을 아이,
자신이 없어도 세상에 남을 누군가를 원한다.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한 ‘흔적 남기기’에 가까운 바람이다.

그 말은 결국,
삶에 대한 갈망이며,
죽음에 대한 공포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숨겨진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3. 산고 앞에서의 미로쿠 – 유일하게 무너지는 순간들

그런 미로쿠가 농담을 멈추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바로, 산고를 대할 때다.

물론 처음에는 그녀에게도 늘 그렇듯 장난스럽게 굴지만,
산고가 점점 중요해질수록,
그의 말투도 조금씩 바뀐다.

산고가 슬퍼할 때,
산고가 동생 코하쿠로 인해 괴로워할 때,
미로쿠는 절대로 가볍게 웃지 않는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말없이 곁을 지킨다.

특히 산고와 결혼을 약속할 때,
그는 장난기가 거의 없는 얼굴로 말한다.
미로쿠가 말장난 없이 고백한 그 순간은
그의 서사 전체에서 가장 ‘진짜’에 가까운 순간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진심이 정착할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4. 진심은 언제였을까?

사실 미로쿠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다만 그 진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웃고, 놀리고, 농담을 앞세웠을 뿐이다.

풍혈을 가진 운명,
가족을 잃은 과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는 사랑을 갈구했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그가 누군가에게 바보 같은 말투로 “나와 아이를…”이라고 말할 때조차,
그건 삶에 매달리는 사람의 외침이었다.
산고를 향해 진심을 드러낸 순간만이 진짜가 아니라,
그의 모든 가벼운 말들이 사실은 삶과 사람을 향한 외로운 손짓이었다.


결국, 미로쿠는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능글맞고 여자를 밝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미로쿠는 자신이 얼마나 짧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유쾌하게 구는 이유는 단 하나.
살고 싶어서,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서,
기억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진심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미로쿠라는 인물은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고,
단지 그걸 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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