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히카루는 바둑이 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 집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바둑판,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유령 사이. 바둑은 히카루에게 그저 ‘어른들이나 하는 심심한 놀이’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점차 그를 바둑이라는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처음엔 사이가 두는 수를 그대로 따라만 하던 소년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두고 싶어 지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히카루는 왜 그렇게까지 바둑에 빠져들게 된 걸까.
사이와의 만남 – 처음엔 유령이 두는 바둑
히카루가 바둑판 앞에 처음 앉은 건 사이 때문이었다. 후지와라노 사이라는 이름의 유령, 그리고 그가 바라는 "완전한 수". 사이는 히카루의 몸을 빌려 바둑을 두고 싶어 했고, 히카루는 그를 달래기 위해 적당히 협조할 뿐이었다.
이 시기의 히카루는 바둑을 이해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바둑은 그저 사이의 욕망을 풀기 위한 매개체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중요한 감정 하나가 싹튼다. "내가 하지 않은 걸로 칭찬을 받는 기분은 이상하다." 히카루는 사이의 수로 상대를 이기면서도, 그 승리가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느낀다. 그것이 처음으로 바둑에 대해 ‘자기 자신의 무게’로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의 시작이었다.
토우야 아키라와의 첫 대국 – 진짜로 맞서는 순간
사이의 지도로 히카루는 어린 천재 바둑소년 토우야 아키라를 압도한다. 하지만 그건 히카루 자신의 실력이 아니었다. 아키라는 충격을 받았고, 히카루는 그 반응에 어딘가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 대국 이후 아키라는 히카루를 ‘추격해야 할 대상’이라 여긴다. 그리고 히카루는 그 눈빛을 기억한다.
“저 아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사이가 아닌, 나를.”
그날 이후 히카루는 바둑을 단지 사이의 세계가 아닌, 자신만의 무대로 만들고 싶어 지기 시작한다.
이기고 싶다 – 감정의 방향이 바뀌다
히카루가 본격적으로 바둑에 빠져든 계기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는 이기고 싶었다. 사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누군가를 넘고 싶었다.
라이벌 아키라를 향한 감정은 단순한 질투나 경쟁심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 갈망은 곧 열정이 되고, 열정은 곧 집착이 된다.
히카루는 점점 사이의 수를 넘어서 자신의 수를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이의 그림자가 아니라 히카루 자신이 만들어낸 바둑을 세상에 보여주게 된다.
사이의 부재 – 혼자서도 두겠다는 의지
사이가 사라진 순간, 히카루는 무너진다. 바둑판 앞에 앉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상실의 공백을 지나, 그는 다시 바둑판 앞에 선다.
그는 깨닫는다. 사이가 그에게 남긴 것은 단지 재능이 아니라, 바둑을 향한 사랑 그 자체였다는 걸.
바둑이란 단지 유령의 집착이 아니라, 이제 히카루 자신의 삶이 되었다는 걸.
결론 – 바둑은 히카루에게 무엇이었는가?
히카루에게 바둑은 처음엔 남의 것이었다. 유령의 꿈이었고, 타인의 열정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였다.
하지만 점점 그는 바둑을 통해 자신이 되고, 자신이기 위해 바둑을 둔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이가 있었던 세계를, 이제 자신이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그것이 히카루가 바둑에 끌린 이유이자,
히카루가 바둑을 계속 두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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