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두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한다.
모든 수를 읽고, 그 어떤 반격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수.
흔히 말하는 **‘신의 한 수’**라는 것.
하지만 이 말은 곧 이렇게 묻는다.
‘완전한 수’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히카루의 바둑』은 단순한 성장물인 동시에, 이 질문을 끝없이 되묻는 이야기다.
사이도, 아키라도, 히카루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이상을 좇는다.
그 끝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그들은 성장하고 상처 입고, 때로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목적지보다는 그 여정 자체일지도 모른다.
사이 – 완벽을 이루지 못한 천재의 잔향
사이의 존재는 ‘완전한 수’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다.
그는 헤이안 시대 최고의 기사였지만, 인생 전체를 걸고도 이룰 수 없었던 한 수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죽은 뒤에도 수백 년을 떠돌며, 히카루를 통해 바둑을 두고,
마지막에는 **"내 안에 신의 한 수는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사라진다.
이 장면은 슬프지만, 동시에 굉장히 솔직한 결말이다.
완전한 수는 결국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이가 보여준 끈질긴 열망과 정진의 태도는 그 자체로 완전함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키라 – 정답을 향한 싸움
토우야 아키라는 항상 정석과 최선을 계산하며 둔다.
그에게 바둑은 수 싸움이며, 논리이며, 계산이다.
그는 언제나 **"틀리지 않는 수"**를 두려 한다.
실수 없는 수, 흐름을 지배하는 수, 언제든 정답이 되는 수.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아키라도 알게 된다.
바둑은 단순한 수 싸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라는 것.
상대의 숨결을 읽고, 흐름을 주고받는 감각이 있어야만
진짜로 깊이 있는 수를 둘 수 있다는 걸.
완전한 수는 이론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순간의 맥락, 인간의 감정, 그리고 기세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아키라는 이 깨달음을 통해 ‘정답’보다는 ‘대화’에 가까운 바둑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히카루 – 완전함을 넘어서 존재하는 무언가
히카루는 처음부터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바둑이 재밌어서, 사이가 있어서, 그리고 그걸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어서 바둑을 뒀다.
그러나 사이가 떠난 후, 히카루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그 속에서 바둑이라는 것의 진짜 무게를 처음 실감하게 된다.
히카루가 나아가는 방향은 정해진 목표가 아니다.
그는 완전한 수를 두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수,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한다.
이 점에서 히카루는 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바둑 속에서 살아 있는 감정을 두는 법을 배운다.
완전함을 뛰어넘는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런 자세일 것이다.
틀려도 좋다. 불완전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 수에 담긴 진심만은, 절대 거짓이 아니다.
완전함은 끝이 아니라 방향이다
‘완전한 수’는 존재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전이라는 건, 수천 개의 경우의 수와 수많은 감정이 겹쳐지는 복잡한 장이다.
그 안에서 완전함은 더 이상 하나의 수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 포기하지 않는 열망이 중요하다.
사이가 그토록 원했던 것도, 어쩌면 신의 한 수 자체가 아니라,
그 수를 좇으며 누군가와 이어지는 순간의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결론 – 인간은 완전할 수 없기에 아름답다
『히카루의 바둑』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완전한 수는 도달할 수 없기에, 인간은 그토록 치열하게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그 치열함 속에 드러나는 감정, 성장, 그리고 이해야말로
바둑이라는 게임이 사람을 울리고, 때로는 구원하는 이유다.
완전한 수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실패하고도 계속해서 걸어가는,
그 불완전한 발걸음 하나하나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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