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루의 바둑』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은 ‘사이’와 ‘아키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 더 눈을 돌려보면, 흥미로운 대조 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
히카루와 쿠와바라, 이 둘은 나이도 배경도 실력도 다르지만,
바둑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서 인상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한 명은 우연히 바둑에 발을 들인 천재,
한 명은 묵묵히 인생을 바둑에 바친 장인.
그들의 교차점은 크지 않지만,
두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올린 시간은
이 작품이 전하는 **‘성장’과 ‘존재의 의미’**를 가장 깊게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카루 – 유령에서 배운 천재
히카루는 처음부터 바둑을 좋아했던 인물이 아니다.
사이와의 만남은 우연이었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그는 ‘스스로 바둑을 두는 이유’를 갖지 못한 채 움직인다.
하지만 히카루는 그 안에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감각과 속도로 성장해 간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수를 읽어내고, 상대의 흐름을 끊어버린다.
이는 단순한 재능, 그 이상이다.
히카루는 본질적으로 감각형 천재다.
그의 성장은 유려하고, 때로는 거칠지만 눈부시다.
한 번 꺾였다가도 다시 도약하는 힘은,
그가 가진 무의식의 끌림, 그리고
결국은 자기 힘으로 판에 앉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쿠와바라 – 가장 인간적인 기사
쿠와바라는 반대다.
그는 ‘재능’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젊은 시절에는 명예 입단조차 하지 못했고,
프로가 되어서도 큰 타이틀 없이,
평생을 조용히 바둑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바둑을 사랑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바둑에 진심이었다.
그는 말한다.
"바둑을 두는 걸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다."
히카루처럼 번뜩이는 수를 두지는 못하지만,
매일을 바둑과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와 무게가 있다.
그런 그가 은퇴를 결심하는 장면은,
히카루의 ‘시작’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누군가는 퇴장하고, 누군가는 등장한다.
바둑판은 세대를 넘어서 계속되고,
그 연속성의 일부로서 쿠와바라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마친다.
교차점 – 한 판으로 이어지는 세계
히카루와 쿠와바라가 직접 대결하는 장면은 없지만,
그 둘은 상징적으로 하나의 판 위에 함께 존재한다.
히카루는 빠른 속도로 세계를 흡수하는 존재라면,
쿠와바라는 오래도록 세계를 지탱해 온 기둥이다.
히카루는 사라져 버린 사이의 존재를 쫓으며
‘진짜 나의 수’를 찾아가고,
쿠와바라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수를 조용히 쌓아 올리며
그 자체로 진짜 기사로서의 삶을 증명한다.
둘의 서사는 다르지만,
결국은 바둑이라는 단 하나의 언어로 연결되어 있다.
결론 – 두 가지 방식의 성장
『히카루의 바둑』은 재능을 찬미하는 작품이 아니다.
히카루가 눈부신 이유는,
그가 단지 빠르게 성장하는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둑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스스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쿠와바라는 어쩌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조연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바둑은 말없이, 히카루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진짜 강함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히카루가 사이를 넘어서야만
마주하게 되는 궁극의 물음이기도 하다.
히카루와 쿠와바라,
이 둘은 세대도 다르고 길도 다르지만,
바둑이라는 무대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성장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방식이 같은 무게의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서브컬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라는 유령의 정체 – 그는 정말 유령이었을까? (0) | 2025.06.25 |
---|---|
히카루는 왜 그렇게 바둑에 끌렸는가? (0) | 2025.06.24 |
‘히카루의 바둑’이 실제 바둑계에 끼친 영향 (0) | 2025.06.23 |
숨결 하나까지 살아 있는 감정 – 교토 애니메이션의 연출 미학 (0) | 2025.06.22 |
울려라! 유포니엄-음악은 도피처인가, 해답인가? (0) | 2025.06.21 |
노조미와 미조레 – 리즈와 파랑새, 우정의 균형이란? (0) | 2025.06.20 |
타나카 아스카 – 리더가 되지 못한 리더의 초상 (0) | 2025.06.19 |
쿠미코와 레이나 – 감정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 관계 (0) | 2025.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