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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쳐

센케츠는 무기인가, 친구인가? –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유대

by 글만있다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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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라킬』을 처음 봤을 때, 센케츠라는 존재는 다소 낯설었다.
말하는 옷이라니. 그것도 피를 빨아야 작동하는 전투복이라니.
처음엔 그냥 특이한 설정이라고만 생각했다.
류코가 센케츠를 입고 싸우는 건 단순한 파트너십처럼 보였다. 강한 무기를 얻은 주인공,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구도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그 ‘무기’는 점점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는 친구였다.
무기로 시작했지만, 함께 싸우고, 대화하고, 갈등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센케츠는 더 이상 류코의 무기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마음을 열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말하는 옷’이라는 상징

센케츠는 생명섬유로 만들어진 살아 있는 옷이다.
말하고 생각하며, 고통을 느끼고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안다.
하지만 그는 완전한 생명체도, 완전한 인간도 아니다.
류코가 처음 센케츠를 입었을 때, 그것은 말 그대로 강제로 주어진 관계였다.

류코는 피를 바치고, 센케츠는 힘을 준다.
조건적이고 거래적인 구조. 무기와 사용자.
하지만 그 안에 대화가 생기고, 배려가 쌓이며, 신뢰가 자라난다.
센케츠는 단지 류코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류코의 상처를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듣고, 때로는 그녀를 지켜준다.
그는 ‘같이 싸우는’ 무기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변화한다.




류코가 받아들인 관계

류코는 자기 자신조차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싸운다.
아버지의 죽음,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생명섬유의 존재.
그 혼란 속에서 센케츠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상대다.

그건 단순히 말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센케츠는 류코를 판단하지 않고, 위로하지도 않지만,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태도야말로 진짜 우정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류코는 센케츠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무기에게는 명령을 내리지만, 친구에게는 말을 건다.
그 차이가, 이들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희생은 무기의 사명인가, 친구의 선택인가

『킬라킬』의 마지막 장면.
센케츠는 류코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 말이 떠오른다.
“이제 넌 내 도움 없이도 괜찮아.”

이 장면에서 나는 헷갈렸다.
센케츠는 결국 무기였던 걸까?
자기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사라진 걸까?

하지만 곧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무기는 목적을 위해 희생한다.
하지만 친구는 마음으로 선택한 희생을 감내한다.
센케츠의 마지막은 자신이 ‘류코의 힘’이 아니라
‘류코의 일부’였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도구가 아니라, 한 생명체로써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 유대는 가능한가

『킬라킬』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옷과 사람, 기계와 감정, 생명섬유와 인간.
그 모든 경계에서 우리는 ‘이해받고 싶다’는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센케츠는 ‘무기’로 태어났지만, ‘친구’로 살아갔다.
류코 역시 ‘복수를 위해 싸우는 소녀’에서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그 둘 사이엔 혈연도, 과거도, 말로 설명되는 감정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은 서로를 선택했고, 신뢰했고, 끝까지 함께였다.


센케츠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는 말 그대로, 류코에게 가장 인간적인 존재였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유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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