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분명 사이였다. 바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히카루는, 사이의 수를 빌려 누군가를 이기고, 사이의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며 바둑판 앞에 앉았다. 모든 것이 유령의 것이었다. 실력도, 명성도, 심지어는 관심조차. 히카루는 그저 빌려 쓰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이를 통한 눈뜨기
사이는 단순한 조력자 그 이상이었다. 그는 완전한 수를 좇는 존재였고, 히카루에게 바둑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알려줬다. 그러나 히카루는 그걸 이해하기 전에 사이를 잃었다.
사이의 부재는 한동안 히카루를 무너뜨렸다.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없었고,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모든 수가 그립고, 모든 돌이 무거웠다. 그렇게 히카루는 멈췄다. 완전히.
하지만 그 멈춤이 끝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수를 찾기 시작한 소년
결정적인 전환점은, 히카루가 스스로 말했을 때였다.
“나도 사이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건 흉내가 아니었다. 계승이었다. 더 이상 뒤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걷기 시작한 자의 고백이었다.
히카루는 다시 바둑판 위에 선다.
사이 없이, 그 어떤 유령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수로, 자신의 방식으로.
사이를 ‘넘어섰다’는 말의 의미
그렇다면 질문은 이거다.
‘히카루는 사이를 넘어섰는가?’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히카루는 아직 사이가 그리던 ‘완전한 수’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더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바둑이 단지 기술의 문제였다면, 이 이야기는 이렇게 오래 남지 않았을 것이다.
히카루는 사이의 그림자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그의 목소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사이를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에 잠식되지 않는다.
그가 두는 수는 이제 온전히 히카루의 것이다.
그렇기에, 히카루는 사이를 넘어서려 하는 존재이고,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사이를 넘어선 증거인지도 모른다.
사이가 남긴 자리, 히카루가 채운 마음
사이가 떠난 바둑판 위에는 아직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건 히카루에게 슬픔이자 책임이고, 무엇보다 원동력이다.
히카루는 더 이상 사이의 대리인이 아니다.
그는 이제 ‘시인데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받은 영향을 이어주는 사람으로서, 한 명의 기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히카루는 정말 사이를 넘어섰을까?
정확히 말하면, 그는 아직도 그 과정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방식만큼은, 이제 그 누구의 것이 아닌 히카루 자신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사이가 정말로 원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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