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브컬쳐

TRIGGER식 연출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가? – 감정의 과잉과 스타일의 미학

by 글만있다 2025. 7. 6.
반응형

처음 『킬라킬』을 봤을 때, 그 압도적인 연출에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화면 가득 넘치는 속도감, 말도 안 되게 과장된 동작,
카메라가 무슨 롤러코스터처럼 회전하고,
대사 한 마디에도 번개가 치고 배경이 날아간다.
그 모든 게 너무 과도해서 처음엔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빠져들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TRIGGER는 왜 항상 이렇게 ‘극단적’인가?




감정의 연출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연출하다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연출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슬픈 장면에는 빛이 줄어들고, 음악이 느려지고, 인물의 표정이 섬세해진다.
하지만 TRIGGER는 감정을 묘사하는 대신, 감정 그 자체로 장면을 만든다.
슬픔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단어가 폭발하고,
분노는 주먹이 아닌 화면 전체가 부서지며 표현된다.
그건 어떤 이성적인 설득이 아니라,
감정을 직접 때려 넣는 방식이다.

그래서 TRIGGER의 연출은 ‘과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감정은 항상 과하니까.
사랑, 분노, 자존심, 희망 같은 것들은 결국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되는 감정들이다.
TRIGGER는 바로 그 감각의 층위를 건드린다.




“이야기”보다 “느낌”이 앞선다

TRIGGER의 작품은 종종 이야기의 구조보다 감정의 흐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킬라킬』이나 『그렌라간』, 『프로메어』 모두
줄거리만 보면 황당할 만큼 전개가 빠르고 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가다.

연출은 그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다.
움직임은 거칠고 선은 굵고, 색감은 쨍하고 극단적이다.
정적인 컷 대신 거친 작화의 움직임을 선택하는 것도,
완벽한 완성도보다는 폭발하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타일”이 아니라 “철학”

처음엔 이 연출이 단순히 개성 있는 스타일이라 생각했지만,
보다 보면 느낀다.
이건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다.
TRIGGER는 꾸며진 감정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감정을 믿는다.

정제된 리얼리즘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상상력으로 진심을 증폭시키는 감정의 리얼리즘.

그래서 TRIGGER는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들의 캐릭터는 우는 장면조차 절규가 되고,
싸움은 우주의 끝까지 도달하고,
결말은 늘 세상의 틀을 벗어나는 쪽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서 끝까지 간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왜 이토록 극단적인가?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틀렸는지도 모른다.
TRIGGER에게 ‘극단’은 목표가 아니다.
솔직함이 극단을 데려오는 것일 뿐이다.
억누르지 않고, 감정을 그 순간의 진폭대로 뿜어내면
결과적으로 그런 연출이 나오는 것이다.

그건 계산된 연출이 아니라,
연출이라는 이름의 감정 표현이고,
감정이라는 이름의 폭발이다.




그래서 왜 TRIGGER인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그 질문에 TRIGGER는 늘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왜 안 되는데?”
힘은 쏟을수록 커진다. 감정은 쥐어짤수록 진해진다.
TRIGGER는 바로 그걸 믿는 제작사다.
작화가 찢어지고, 스토리가 뒤틀려도 상관없다.
단 하나, 진심만은 거짓이 아니어야 한다.

반응형